Apr 22, 2024
Reading Korean books / 한국어 책읽기 / 편지가 달려온 거리
01 편지가 달려온 거리
어렸을 때, 엄마는 나에게 참 많은 편지를 주었다.
엄마랑 자주 싸웠던 나에게 준 편지, 친구랑 싸워서 힘들어 한 나에게 주는 편지, 시험기간에 공부하는 나에게 주는 덕담 편지, 언제나 그런 편지를 받았었고 당연한 줄만 알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나는 학업 때문에 엄마랑 싸울 시간조차 없었다.
엄마도 간호조무사 실습을 나가서 서로 바빴다. 그래서 요즘은 제대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 주쯤, 시험공부가 너무 귀찮아서 청소한다는 핑계로 더러운 서랍을 치우다가 초록색 상자를 발견했다. 친구, 이모, 엄마가 준 편지가 있었다.
그때는 읽지 않았는데, 어제 갑자기 궁금한 나머지 한 장 한 장 읽어보았다.
친구는 생일 편지였고, 이모는 크리스마스 편지였다.
02 편지가 달려온 거리
엄마는 생일, 크리스마스, 평소에 써줬던 편지였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 글씨라서 글씨를 한참 바라보았다.
내용을 천천히 읽자 왠지 모를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편지 마지막 줄에 있는 말은 항상 ‘민선아, 엄마는 널 믿어. 사랑해.’
이런 말이 그 때는 아무런 감정이 안 들었는데 지금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좋은 엄마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도 항상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공부도 안 하고 반항도 심한 막내딸이 었다.
내가 엄마에게 편지하나 제대로 써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나마 쓴 것도 내가 유치원에서 쓰라고 한 편지뿐, 하지만 그것도 엄마는 그것조차 내 방 거울에 꽂아두었다.
03 편지가 달려온 거리
왜 나는 그런 엄마에게 가시 박힌 말을 던지고 반항했던 걸까?
‘좀 더 엄마에게 잘 해줬더라면...’
엄마에게 가시 박힌 말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주름이 조금 더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항상 나를 걱정하던 엄마,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던 엄마, 매일 반찬통도 제 대로 못 여시고 저녁마다 파스를 붙이고 자는 엄마의 모습이 서서히 겹쳐져서 생각이 난다.
지금 엄마에게 할 말은 죄송하단 말밖에 없다. 왜 엄마가 쓴 편지를 이제 마음으로 깨달은 걸까?
그 따뜻한 말이 왜 지금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걸까? 사춘기가 온 나에게 엄마가 보낸 편지는 바로 손에 닿았지만, 마음에 닿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엄마 또한 나에게 그랬듯 나도 엄마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보내드리고 싶다.
‘엄마, 달빛을 머금은 은행들이 떨어지는 가을이 왔습니다.
요즘 환절기라 참 추우니 옷 따뜻하게 입으세요. 이런 편지 참 오랜만이죠?
04 편지가 달려온 거리
서로 바빠서 얘기할 시간도 별로 없어 짧게 편지를 보내요.
요즘 실습하는 게 참 힘들죠? 그래도 전 늦게라도 초등학생 때 원했던 간호사는 아니지만 비슷한 간호조무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엄마는 꼭 합격할 거예요.
엄마가 저를 항상 믿어왔듯 저도 항상 엄마를 믿고 있어요. 사랑해요.’
편지가 달려온 거리는 한참 멀고 먼 길이었다.
항상 힘이 넘쳐나던 엄마, 나에게 늘 도움을 주셨던 엄마는 이제 사라져간다.
이젠 내가 힘이 넘쳐나서 엄마를 도와 드려야 하고 여태까지 엄마가 준 사랑들을 줘야 할 때인 것 같다.
너무 늦게 깨달아서 엄마의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엄마를 다시 못 볼 때까지 잘 해드리고 싶다.
편지가 달려온 먼 거리는 엄마와 나의 벽이었다. 이제 나는 편지가 달려온 거리를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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