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17, 2024
reading Korean book / 한국어 책 읽기
🔷01 까치우체국
날씨가 끝내준다. 이런 날에는 아빠랑 자전거 타면 신날 텐데, 바쁜 내 아빠다.
엄마는 투정 부리지 말라고 하지만, 매일매일 아빠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은 불공평한 것 같다.
특별히 나처럼 아빠와 얼굴이 붕어빵에다가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부녀는 같이 지내야 하는데 말이다.
아빠가 부여에 내려가신지 6개월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너무 슬퍼서 밤마다 울고 잘 때는 무서워서 잠도 못 잤다.
봄에 내려가셨지만, 추울 때여서 아빠가 주무실 때 추울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덥고 시원하다.
가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영상 통화를 하고 쉬는 시간에도 하트도 보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빠도 나도 영상 통화도 안 하게 되고, 문자도 할 말이 없어졌다.
🔷02 까치우체국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인가!
아빠의 가을 옷을 보내드리려고 엄마랑 우체국에 갔다. 우체국 견학 와서 저축도 한다.
2학년 때 우체국 견학 와서 배웠던 것 같다. 이사를 온 지 3년째인데, 집 가까이 있는 우체국을 두 번 밖에 안 와봤다니..
처음 이사 왔을 때 우체국이 가깝다고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다.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사 왔을 때 재밌는 기억이 난다. 이 동네에 까치가 많다.
전에 살던 동네에는 비둘기가 많았는데 까치가 많아서 신기했다.
그래서 집 앞 우체국 간판에 새 그림도 까치인 줄 알았다.
까치가 많아서 우체국도 까치 우체국인가? 생각했었다.
이제는 소식을 전해주는 제비라는 사실을 완벽히 알고 있다.
우체국 안에는 손님이 많았다.
추석이 다음 주라서 그렇다고 했다. 택배 박스가 쌓여서 우리 모녀도 기다렸다.
🔷03 까치우체국
기다리면서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는 핸드폰이 없어서 마음 고백을 편지로만 할 수 있었는데, 아빠한테 편지 한 줄을 무슨 말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밤을 꼬박 새웠던 날이 많았다고, 글씨체가 맘에 안 들어서 다시 쓰고 마음 표현이 강한 것 같아서 또 썼다고..
엄마, 아빠 편지가 궁금했는데 엄마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놀랐다.
“지금은 그 시절의 낭만이 없어. 가을이 와서 그런지 아빠가 아주 많이 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럼, 오늘 우리 아빠한테 편지 써 볼까?”
엄마도 좋은 생각이라고 하셨다.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옛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겠다.
핸드폰으로 사랑한다는 글 확인할 때 보다, 우편으로 온 편지를 뜯어보고 기뻐하실 아빠를 생각하며 아주 멋진 편지를 쓰고 싶다.
오늘 밤, 나도 날은 꼬박 새울 것 같지만 마음이 벅차오른다.
우체국이 거리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아빠와 나 사이도 가깝게 해주는 것 같다.
🔷04 소망우체국
우리 가족은 작년 이맘때쯤 울산에 있는 간절곶을 찾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언니, 동생 모두 일곱 명의 대가족이 떠난 아주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간절곶은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유명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의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리고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시질 않으셨다.
우리 가족은 다리 아픈 할머니 때문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간절곶 여기저기를 천천히 걸었다.
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초록 우체통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알던 우체통 색과 달라서 신기했다.
가까이 가보니 ‘간절곶 소망 우체통’이었다.
🔷05 소망우체국
일 년 뒤에 배달된다고 적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소망 편지를 쓰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큰 우체통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과 소망의 메시지들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들도 소망을 적어 보라며 엄마는 세 장의 엽서를 사오셨다.
언니, 나, 동생은 엽서를 한 장씩 들고 한참을 생각했다.
‘무슨 소망을 적어볼까?’
동생의 엽서를 슬쩍 보니 ‘엄마, 아빠 과자 많이 사주세요.’라고 적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 우리 할머니를 생각했다.
우리 집에서 나의 말도 잘 들어주시고, 나의 온갖 투정 다 받아주시는 나의 친구 같은 우리 할머니시다.
언니, 동생과 싸우면 엄마와 달리 내 편이이시다. 중간에 끼어 사랑도 못 받는다고 할머니는 나를 더 예뻐하시고, 나를 더 많이 안아주신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언제나 든든한 나의 편이다.
🔷06 소망우체국
그런 할머니는 아픈 다리 때문에 항상 집에만 계신다.
할머니가 애써 가꾸시던 해미골 고사리 밭에 홍시 따러 가자고 해도
“내는 다리가 아파서 못 간다. 시연이가 따 온나.”
하시며 집에만 계시려고 한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위해 나의 소망을 담아
‘따뜻한 봄이 오면 우리 할머니의 놀이터인 해미골 고사리 밭에서 고사리도 끊고,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입맛 돋우는 머위도 캐고, 진한 봄 냄새가 나는 산나물도 뜯어 올 수 있게,
가을이면 나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홍시, 단감, 대추 따러 갈 수 있도록 우리 할머니 아픈 다리를 빨리 낫게 해주세요.’라고 적었다.
커다란 초록 소망 우체통이 나의 간절한 소망을 꼭 이루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초록 우체통이 나의 소망을 들어준 걸까? 지금은 우리 할머니의 다리가 많이 좋아지셨다.
일요일에는 할머니와 해미골 고사리밭에 홍시, 대추를 따러 가기로 했다. 초록색 ‘소망 우체통’에 소망을 적은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우리 할머니의 좋아진 다리처럼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 나의 소망이 담긴 엽서에 희망이 함께 오길 기대해 본다.
🔷07 하늘나라로 간 택배
내가 7살이 되던 해. 삼촌은 먼 곳 하늘나라로 가버리셨습니다.
삼촌은 항상 친구처럼 웃고 떠들며 함께 놀아주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삼촌이 하늘나라로 갈 때, 제가 어려서인지 모두가 숨죽여 울 때 마냥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엄마도 눈에 눈물이 고인 채 말씀하셨습니다.
“희진아, 삼촌이 지금 저.. 저 멀리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하러 갔으니까. 잘 가라고 손 흔들어 드릴까?”
그땐, 마냥 말도 안 하시고 가셔서 서운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삼촌 없이 지내는 몇 개월이 지난 후에 학교에서 사랑하는 사람, 멀리 있어서 못 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전 가장 보고 싶고, 또 사랑하는 분, 삼촌께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주소... 주소는 큼지막하게 ‘하늘나라’라고 썼습니다.
🔷08 하늘나라로 간 택배
집에 오자마자 저는 엄마께 말했습니다.
“엄마, 삼촌도 나 보고 싶으시겠지? 그치?”
“그럼.. 아주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런데, 왜?”
“짠! 내가 주소도 적었고, 사랑한다고도 적었어! 우리 우체국에 편지랑 내 종이꽃이랑 같이 택배 보내러 가자~!”
“그래, 가자. 엄마가 보내줄게”
그날 이후로도 편지를 써 엄마께 드리면 엄마가 모두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엄마의 눈엔 눈물이 고일 듯 말 듯했습니다.
제가 쓴 편지는 제 맘과 함께 풍등에 날려 보내기도 하고, 우체통에 쏙! 하고 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흘러간 후, 엄마가 말씀하신 그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흘리신 그 눈물의 의미도 깨달았고, 더 이상 편지도 쓰지 않았습니다.
🔷09 하늘나라로 간 택배
“희진아, 요즘은 왜 편지 안 쓰니?”
“어차피 보시지도 못하고 엄만 슬퍼하실 거잖아요.”
“아냐. 삼촌께선 하늘나라에서 다 보셔. 그리고 너도 언제나 지켜 주실 거야.”
엄마의 말씀에, 제 맘 그 깊은 곳이 먹먹해지며 방에 들어가 울어버렸습니다.
아마 예전에 제가 울어야 했던 순간의 몫까지 많이 울어버렸던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삼촌이 계신 납골당에서 인사를 드리곤 합니다.
꿈에서라도 삼촌이 주신 저의 수많이 편지의 답장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편지도. 제 마음도 담은 택배 상자가 모두 모두 하늘나라에 도착했으면 좋겠습니다.
🔷10 최고의 배달원
우리 아빠는 택배 배달부이다.
사람들에게 택배를 전달해주는 아빠는 비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햇빛이 내리쬐는 날에도 항상 배달을 하신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날에는 혼자 저녁을 차려 드신다.
다 드시고 나면 그 투박한 손으로 설거지를 조용히 하시고는 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아, 내 얼굴을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어루만지시고 방을 나가신다.
아침이 되어 아빠가 출근하셨는지, 나 홀로 있는 집에서 아침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섰다.
학교 가는 길에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던 여학생들이 어제 왔던 택배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택배가 너무 늦게 왔다고, 택배 아저씨한테 문자로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짜증을 냈더란다.
나는 그 얘기가 듣기 싫어 걸음을 재빨리 하고 학교에 도착했다.
🔷11 최고의 배달원
교실에 들어왔더니 한 쪽에서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려 귀를 기울이니, 한 남자아이가 최신형 게임기를 샀는지 자랑하려고 들고 왔는가 보다.
그때 구경을 하던 또 다른 한 남자아이가
“야, 여기 부서졌는데?”
라며 부서진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더니 그 게임기를 산 애가
“뭐야, XX. 택배 제대로 배달 안 하냐? 이게 얼마짜린데….”
라며 다른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게 웃을 일인가.’
라며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말을 했다면 아이들은
“너네 부모님 배달원이냐? 일 좀 똑바로 하라고 전해라.”
라고 할 게 뻔했다.
🔷12 최고의 배달원
부서져 있는 게임기를 보던 아이는 화가 났는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담임선생님 시간에 선생님이 설문조사를 하나 하신다고 하고 종이를 나눠주셨다.
설문 조사지를 보니 부모님의 직업란이 있었다.
난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가 계시지 않았기에 아빠의 직업을 적으려다, 내 짝과 주위 아이들의 눈치를 보고 적었다.
설문지를 걷으려 맨 뒷자리의 아이가 일어나 내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빼앗듯이 들고 가더니 눈이 커짐과 동시에
“너네 아빠 택배 배달부냐?!”
라며 소리를 쳤다.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하라고 하시고는 어느 한쪽에서
“혹시 그 늙은 배달부가 쟤네 아빤가?”
“역시 늙으니까 나잇값 하네.”
라는 말이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의 사고 회로가 다 정지된 듯했다.
🔷13 최고의 배달원
눈앞이 새하얘지더니 정신을 차리던 그때, 나는 그 말을 한 아이에게 다가가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말리던 선생님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얼굴을 계속 가격했다.
선생님이 결국 나를 들어 올림으로써 이 사단은 끝이 났다.
그 후로 나와 나에게 맞은 아이는 교무실로 불려왔다. 곧이어 그 아이의 부모님이 오시고 우리 아빠가 오셨다.
아빠는 오시자마자 무릎을 꿇으셨고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보기 안 좋은 모습으로 건성건성 들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내 머리를 눌러 강제로 사과를 하게 하고는, 아빠와 달리 럭셔리해 보이는 아이의 엄마에게 한번 더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나왔다.
아빠는 나를 돌려세우고 내 이름을 불렀다.
🔷14 최고의 배달원
오랜만에 듣는 아빠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었다.
그리고 내 두 손을 잡고 ‘원래 다 이러면서 크는 거라고’ 나를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괜찮다고 웃어주었다.
아빠의 거친 손을 만지면서 이제야 아빠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와 대화를 나누며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
아빠랑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어색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우리 집인지라 싼 자장면을 먹었지만 나는 지금 순간이 제일 행복하고 제일 맛있었다.
아마 아빠와 함께 먹는, 아빠의 사랑이 든 자장면이라 그런 것 같다.
이제 더 이상의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당당하게 우리 아빠의 직업을 말할 것이다.
뭐 어때, 우리 아빤데. 적어도 나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배달을 잘하는 우리 아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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