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 2024
reading Korean book / 할머니의 보물
01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
우리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갓으로 유명한 여수 돌산이다. 우리 할머닌 돌산에서 갓과 마늘을 재배하신다.
그래서 항상 마늘 철만 되면 우리 집은 연례행사처럼 할머니네 집에 가서 마늘 캐는 일을 도와야 한다. 올해도 똑같은 일이 시작되었다.
“상우야, 이번 주말엔 여수 할머니네 가서 마늘 캐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러니 친구들이랑 주말에 약속 잡지 마라."
"엄마, 안 가면 안 돼요? 할머니는 연세도 많으시면서 그냥 쉬시면 될 일을 왜 자꾸 혼자 짓지도 못하실 농사를 지으시나 모르겠어요."
할머니네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나는 투덜거리며 엄마에게 짜증을 내었다.
솔직히 내가 할머니네 집을 가기 싫어하는 이유는 인터넷도 안 되고 벌레도 많고 화장실도 완전 옛날 화장실인데다 주변에는 마트도 한 개 없어서 아파트에서만 살던 나에겐 불편한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집에선 아빠의 특명이 내려진 이상 어떠한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 불만만 늘어놓다 주말이 되어 우리 가족 모두 할머니네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02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
도착해 보니 할머니는 집에 계시질 않았다. 보나마나 마늘 밭에 계시겠지...
엄마는 가자마자 품앗이 하러 오신 분들께 새참을 내드리기 위해 시장을 봐 온 것으로 음식을 만드셨다.
“상우야! 엄마가 새참 만들어 나갈 동안 아빠랑 얼음물 좀 갖고 마늘 밭에 좀 가 보렴. 오늘 날씨가 여름 날씨처럼 너무 덥구나.”
그런 엄마의 말씀에 얼음물을 들고 아빠와 함께 완전 무장을 하고 마늘 밭으로 향했다.
많은 분들이 마늘을 캐느라 분주하신 모습에 저만치 땡볕에서 마늘 캐시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큰챙모자에 목에 수건을 두르시고 손을 바삐 움직이시는 할머니를 보고 큰소리로 "할머니~ 저 왔어요!"라고 외치며 곁으로 다가갔다.
한참 마늘을 캐시며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던 할머니가 나를 보고 "워메 워메~ 우리 똥강아지가 와 붓네잉~."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는 흙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나를 보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시며 크게 웃고 계셨다.
03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
나는 가져간 주전자에서 할머니께 얼음물을 한 잔 따라 드리고 할머니 옆에 앉아 마늘 캐는 법을 배워가며 마늘을 캐어 보았다.
보기엔 쉬워 보였는데 마늘이 다치지 않게 캐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할머니! 큰아버지 말씀대로 이제 농사 안 지으셔도 되잖아요? 작년에도 올해만 짓고 안 짓는다고 하셔 놓고 또 지으시고 또 지으시고..."
"우리 상우가 할머니 걱정을 다 해 주고야, 워메 내 새끼 이쁜 것~."
한동안 큰 소리로 웃으시던 할머니께서
“상우야! 할매가 안 짓는다고 해 놓고는 왜 또 짓는 줄 아냐이잉?"
“왜 자꾸 안 지으신다고 하시고 또 지으세요?"
"그게 말이여. 농사꾼은 땅을 놀리지 못해서 그랴~. 농사꾼은 한 뼘의 땅만 있어도 땅을
못 놀리는 벱이여. 왜 그냐면 땅은 거짓말을 안 한단 말이시."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04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
“요로코롬 마늘을 심어 놓고 내가 이것들한테 정성 들여 가꿔 주면야 나에게 크고 좋은 마늘만 준당께. 봐라, 얼매나 마늘이 크고 안 좋냐~.
그리고 이것들도 내가 쬐금 신경을 덜 썼다 싶으면 벌써 마늘이 안 좋당께. 그랑께 할매가 마늘 심어 놓고 풀도 메주고, 쫑도 뽑아 주며 야들한테 잘 자라주라고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주는 겨.
그라면 요것들은 다 알아묵고 아주 앙팡지게 잘 큰단 말이지."
"땅이 좋아야 농사도 잘 되는 벱이고, 농사꾼들에게 땅은 끊이지 않고 계속 먹을 걸 주는 보물인 것이여."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간혹 할머니가 밭에서 혼자서 계속 말씀을 하시는 걸 보고 솔직히 할머니 머리에 문제가 있는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혼자 이야길 하셨던 이유를 알게 되니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심은 작물들이 잘 자라라고 좋은 이야기도 해 주시고 노래도 불러 주시고 정성을 들여 가꾸신 우리 할머니의 마늘들.
05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
"상우야! 할머니가 살면서 가장 무섭고 고통스러웠던 게 뭔 줄 아냐잉?"
"귀신 아닐까요?"
"귀신? 그래 그래 귀신 무섭제. 하지만 더 무서운 게 있당께."
"그게 뭔데요?" 하고 여쭤 보았다.
"그건 말이지, 배고픔이여. 할머닌 이북 사리원이 고향이었당께.
지금은 전라도 사람이 다 되어 부럿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피난 내려오면서 가족들도 다 죽고 할매 혼자만 살았당께.
할매 나이가 그때 열일곱이었단 말이시.
피난민들 따라 밑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응께 전쟁통에 누가 날 도와 주것냐.
한 3일 굶으니 눈에 뵈는 게 없더랑께. 쉰 음식이든 썩은 음식이든 입에 넣을 수 있는 거면 닥치는 대로 입에 쑤셔 넣어 묵고 탈이 나서 죽으나 배고파서 죽으나 이판사판이었제.
배고픔의 고통이 얼매나 크고 무서운지 할매는 그때 처음 알았당께. 그러니 먹을 것을 주는 이 땅이 얼매나 감사하겠냐."
06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
"휴전되고 오갈 데 없어서 그냥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온 거이 여기 여수까지 안 왔냐.
여기서 느그 할아버지 만나 가난해도 알콩달콩 새끼 낳고 참 재미지게 살았당께."
"그땐 먹을 거서부터 모든 게 다 부족했을 시대여.
정말 느그 할배랑 나랑 손발톱 다 빠져가며 열심히 돈 벌어 처음 산 땅이 지금 이 땅이제.
배고픔의 고통이 얼매나 큰지 아는 이 할매가 심으면 심는 대로 먹거릴 내주는 이 땅이 얼매나 고맙것냐.
이 땅에서 자라난 작물 팔아서 느그 큰아빠며 느그 아빠, 고모들 모두 공부 시키고 결혼도 시키고 참말로 이 땅이 할매는 너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당께. 그랑께 이 땅을 놀리면 쓰것냐.”
"힘들 땐 농사고 뭣이고 다 귀찮다마는 이 넓은 땅 한곳 한곳마다 느그 할배랑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단 말이시.
그라고 이젠 여그서 60년도 넘게 살응께 동네 사람들도 다 가족 같고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이리 품앗이도 안 허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들어 밭을 한번 훑어보았다. 엄청나게 넓은 이 땅에 할아버지, 할머니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다니...
07 할머니의 소중한 보물
우리 집보다 불편한 것이 많은 할머니네 집에 간다고 짜증을 부리던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하고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난 아직 할머니 말씀처럼 배고픔의 고통과 무서움을 잘 알지 못한다. 먹기 싫어 안 먹은 적은 있어도 먹을 게 없어 굶어 보진 않았으니깐.
지금은 전화 한 통이면 집까지 배달되는 음식들이 넘쳐나니 배고픔이 무서운 건지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도, 아빠에게도 이 밭은 힘든 시절 희망을 주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왜 우리 할머니가 농사를 안 지을 수 없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살아 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할머니만의 소중한 보물인 마늘밭.
'땅은 거짓말을 안 한다.'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보며 정말 땅에 대한 소중함, 자연에 대한 감사함, 먹거리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 보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땅을 기름지게 잘 가꿔야 농작물도 풍년이 든다는 할머니 말씀처럼 앞으로도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생활을 해 보며 항상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나의 편식 습관부터 고쳐보도록 노력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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