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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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2021년 10월호
<정교하게 준비된 한국 편의점의 매력>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대부분 각자 기억에 남을 '편의점 경험’이 있다. 내 경우에는 이런 경험이 ‘현지인’이 된 것 같은 소속감을 갖는 데 기여했다. 한국 편의점은 단순히 이곳에 사는 것 이상의 마음을 갖고 싶을 때 충분히 매력적인 장소다.
친근함이 느껴지는 다양한 즉석 메뉴
한국으로 이사 온 후 제일 처음 먹은 음식은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바나나 우유, 간식용 오징어, 단무지였다. 밤 10시 반 무렵, 편도 16시간 비행 이후 시차 적응에 지친 나는 임시 숙소인 오피스텔의 계단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복잡한 거리 사방에서는 소리의 불협화음이 쏟아졌다. 끝없는 마르코 폴로 게임처럼 서로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차와 버스들, 지하철 진입을 알리는 실로폰 소리, 회식 2차로 돼지갈비를 먹을지 회를 먹을지 결정하는 초췌한 얼굴을 한 회사원들의 이야기 소리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내 이 도시에 살게 되었다는 흥분만큼이나 밀려오는 허기와 함께 예민해진 신경은 갑작스럽게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었고, 제대로 된 식당을 찾아보거나 맥도날드의 키오스크를 해석할 엄두조차 나지 않게 했다. 밖에 혼자 서서 돌아보니 진한 오렌지색과 붉은색의 ‘7’자가 빛나는, 내 눈에 익숙한 녹색 간판이 보였고, 잠시나마 집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핫도그의 독특한 향이나 수상쩍게 끈적거리는 바닥은 없었다. 대신 정교하게 준비된 요리의 세계라 할 만한, 깨끗하고 시각적인 만화경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다종다양한 면 제품을 훑어본 후 게맛살과 매운 떡볶이 사이에 매달린 각양각색의 군침 도는 소시지를 살펴보는 데만 10분이 걸렸다. 무엇을 고를지 얼어붙은 나는, 한국 드라마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 바나나 우유와 완벽한 식사가 되길 바라며 순전히 호기심에 고른 음식을 샀다. 실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다.
미국 텍사스에서 시작된 편의점
지리적 차이는 차치하고 빛나는 간판과 캐주얼한 분위기, 줄줄이 이어진 즉석식품을 갖춘 편의점은 문화 아이콘이다. 우연히도 편의점이라는 ‘콘셉트’는 나의 고향인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1927년 시작된 것으로, 음식을 차게 유지하기 위해 얼음조각을 팔던 가게가 음식도 팔면서 점점 발전했다. 사우스랜드 아이스 컴퍼니로 시작한 이 가게는 나중에 세븐일레븐이 되었다.
한국에는 현재 4만 8,000여 개가 넘는 편의점이 있으며 형태와 규모도 각기 다르다. 어떤 편의점은 손바닥으로 결제가 가능한 AI 기술도 구비돼 있어 ‘스마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편의점이 일상생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아침 하이킹 전에 제철 딸기 샌드위치를 먹는 것부터, 늦은 밤 친구들과 야외에서 맥주와 간식을 즐기는 것까지 한국에서의 가장 애틋한 추억에는 24시간 편의점과 관련된 추억이 꽤 있다. 버스 정류장까지 오가는 길과 회사에 이르는 거리에서만 편의점 네 곳을 지나치는데, 배가 고파서든지 아니면 화장지 같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든지 어떤 이유로든 편의점에 가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최근에 푹 빠진 것들로는 인스턴트커피 그리고 미국산 치즈를 올린 불닭볶음면과 반숙란, 조그마한 용기에 담긴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마른 오징어, 크래프트 맥주인 시원한 에일 맥주, 초콜릿 추로스 등이 있다.
후회할 걸 알지만 먹게 되는 맛
나는 지금 한강 둔치의 GS25 편의점 앞에 놓인 야외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소시지 덩어리와 모차렐라 치즈 조각을 얹은, 이상할 정도로 빨간 떡볶이를 먹고 있다.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내 감각을 채우며 한국에서 처음 먹은 식사의 기억을 강렬하게 떠올렸다. 그때로부터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도시를 가로질러 2층 빌라로 이사를 왔고 한국어를 할 때 존댓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이제 전자레인지도 능숙하게 사용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혼자 또는 친구 한둘과 함께 편의점 만찬을 즐기고 있다. 한입 먹을 때마다 땀방울이 눈썹 위로 맺히기 시작해 땀을 닦으며 이 엄청난 매운맛이 주는 효과를 조심스레 숨겨 보려 한다.
엄청나게 큰 선 캡을 쓴 나이 지긋하신 여자분이 나를 발견하더니 웃음을 짓는다. “괜찮아요? 너무 맵죠?” 나는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말한다.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나중에 후회할 걸 잘 안다는 듯 다시 웃는다. 나는 떡볶이 몇 입을 더 먹으면서 아무래도 집에 가는 길에 매실청이나 인삼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좋은생각" 2022년 1월호
<늦깎이 수강생 할머니>
지난해 나는 문화 센터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 80세의 늦깎이 수강생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하얗게 센 짧은 머리에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일주일에 세 번 인문학 수업을 들으러 왔다. 매일 오고 싶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며 늘 아쉬워했다. 할머니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날의 자료까지 챙겨 가곤 했는데 집에서 독학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매주 독서와 과제를 하고 발표도 해야 했지만,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나를 손녀처럼 살갑게 대하며 간식거리도 챙겨 주었다. "보조 선생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오?" "스물일곱입니다." "부럽네. 나는 이제야 배우는 재미를 알았는데 너무 나이 들어 버렸어." "아직 정정하신 걸요!" "우리 젊을 적에는 인문학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지. 몇 년 전부터 여기를 다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야. 평생 모르다가 이제 알았어. 지나간 세월이 참 아깝지."
우리 외할머니 세대만 해도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게 당연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위해 젊은 세월 다 보냈을 테다. 외할머니도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15년 전쯤 병상에 누웠고, 몇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외할머니에게 문화 생활이란 집에서 테이프를 틀어 놓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있었더라면 좋은 것 많이 보여 줬을 텐데. 나는 외할머니 생각에 잠기곤 했다.
매일 1등으로 출석한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그러던 중 사무실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네. 인문학 교실입니다." "나예요. 내 목소리 알겠어요?" "네, 어르신! 요즘 왜 안 나오시나요? 계속 기다렸어요." "얼마 전 눈길에서 낙상 사고를 당해 못 나갔어요." "그러셨군요. 어서 나으셔서 수업 들으러 오셔야지요." "네. 그럴게요. 항상 고마워요."
수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상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책 한 권 읽는 일조차 미루어 온 내 모습을 떠올리니 부끄러웠다. 할머니를 보며 배움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얼마 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할머니는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수업을 들으러 왔다. 오른팔을 다쳐 글자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눈길을 헤치고 먼 길을 온 것이다. 할머니는 머리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며 누구보다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 다친 곳은 괜찮으세요?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괜찮아. 오른팔은 다쳤어도 두 다리는 멀쩡해. 내가 재즈 정말 좋아하거든. 이보다 행복할 순 없지."
새해 선물이라며 동그란 양철통에 담긴 쿠키를 건넨 작고 주름진 손을 기억한다.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할머니의 열정과 따스한 마음에 어느 때보다 온기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나도 늦깎이 수강생 할머니처럼 멋지고 온화하게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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