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10, 2022
"좋은생각" 2022년 7월호
"좋은생각" 2022년 7월호
< 성공하였습니다 >
점심시간이면 보통 구내식당에 간다. 3,000원으로 가정식 백반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원증에 미리 현금을 충전해 두고, 식당에 설치된 리더기에 사원증을 대면 비용이 결제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리더기에 사원증을 갖다 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실패하였습니다.”
잔액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동료가 밥값을 대신 결제해 주었지만, 창피함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곱씹을수록 불쾌했다. 잔액이 부족하다거나 다시 한번 시도하라는 표현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점심 한 끼 먹는 일에 실패했다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금액을 충전한 사원증을 자신 있게 리더기에 댔다. “성공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친 소리가 새삼스레 귀에 꽂혔다. 거의 매일 이 말을 들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매일 성공을 경험한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는 일, 심한 교통 체증을 뚫고 출근하는 일, 회사의 업무 처리, 가족과 함께 따뜻한 집에서 잠들기.
작은 실수에도 자책하고 예민해져 수많은 성공을 깨닫지 못했다. 예측 못할 갖가지 사건 속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큰 성공인가.
이제는 점심시간마다 ‘오늘도 성공할거야.’ 다짐하며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리더기가 외치는 한마디에 힘을 얻고 스스로에게도 큰 소리로 말해 준다. 아침에 눈을 뜰 때, 회사에 들어설 때, 보고서 결재를 받을 때,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할 때, 가족과 식사할 때.
“성공하였습니다!”
“좋은생각” 2022년 7월호
< 여덟 살 마음 >
휴직 중이라 수입이 팍 줄었다. 이제부터 긴축 생활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더니 여덟 살 딸도 긴장하는 눈치였다.
문방구 뽑기는 천 원이고, 편의점에서도 천 원 이하 과자를 찾기 어려웠다. 용돈이 바닥나기 시작한 딸은 다짐했다. 포켓몬 스티커를 팔아 돈을 벌겠다고. 같은 반 친구에게 중고 거래 앱으로 스티커를 사고팔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나와 딸은 머리를 맞대고 앱을 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빵의 정가가 천오백 원인데, 부록처럼 든 포켓몬 스티커는 장당 삼천 원이 넘었다. 딸이 스무 장 넘게 모은 스티커를 팔면 그간 쓴 값을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침을 꼴깍 삼키며 요즘 스티커는 이 정도 가격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더니 기뻐할 줄 알았던 딸의 얼굴이 어두웠다. ‘어떤 스티커부터 팔아야 할지 고민하나 보다.’
잠시 뒤 딸이 말했다.
“한 장당 천 원에 팔 거야. 너무 비싸면 갖고 싶은 사람이 못 사잖아.”
“너무 싸게 팔면 손해야.”
“싫어. 나는 서비스도 줄 거야.”
딸은 말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인기 스티커를 덤으로 주겠다고 우겼다. 아내가 나를 살며시 제지했다.
“여덟 살이 아니면 못하는 생각이야. 돈 주고도 못 사는 마음이라고.”
스티커를 산 사람은 나와 함께 나온 딸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어린 판매자는 처음 본다면서 즐거워했다. 딸은 스티커를 건네며 서비스도 넣었다고 알려주었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행복해 보였다.
나는 중고 거래의 참맛을 잠시 잊고 있었다. 쓸 만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싸게 주는 기쁨 말이다.
“좋은생각” 2022년 7월호
< 취사병의 깨달음 >
“놔둬. 엄마가 할게.” 내가 집에서 손에 물이라도 묻히면 엄마가 하는 말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 나는 기숙사에서 종종 빨래만 했을 뿐, 집안일이 얼마나 많고 힘든지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입대를 했고 생각지도 못한 취사병이 되었다.
수백 인분 음식을 조리하고 그릇을 설거지하며 생긴 습진은 피가 날 정도로 심해졌고, 익숙지 않은 칼질에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일에 적응할 즈음, 문득 그간 일과 살림을 도맡은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어떻게 혼자 이걸 다 했지?’
사춘기가 오기도 전에 아빠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아 그저 착하게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싸울 일이 생겨도 웃어넘기고, 남들보다 일찍 책을 펴고 늦게 불을 껐다. 방학에 집에 가면 그동안 고생했으니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엄마의 고생을 외면했다.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우릴 위해 달려와 주는 엄마의 위대함을 미처 체감하지 못했다. 엄마는 일을 끝내고 돌아와 아들딸을 위해 늘 따뜻한 밥을 지었다.
군 생활을 하며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직접 경험하고서야, 자식을 등에 업고 세상에 홀로 선 어머니를 헤아린 것이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내가 취사병이 된 게 아닐까? 앞만 보지 말고 뒤돌아서서 부모님 얼굴을 마주하라는 뜻일까?’
소중한 깨달음과 함께 군 생활을 마친 내게 엄마가 이야기했다. “아들, 나라 지키느라 고생했어.” 그 말에 울컥하며 생각했다.
‘엄마도 가정을 지키느라 고생했어. 이제는 나도 같이 짊어질게.”
“좋은생각” 2022년 7월호
< 스물세 살>
스물세 살 아들이 다른 지역으로 독립하게 되어 같이 집을 보러 갔다. 스물세 살, 내가 엄마가 된 나이다. 아이가 왜 우는지 몰라 함께 울었고, 분유 양을 잘못 맞춰 배고픔에 울게도 했다. 이유식을 시작한 뒤 일주일간 배변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힘을 주기도, 걸음마 떼는 아이의 손을 놓쳐 머리에 혹을 달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서툰 엄마가 나였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가 되었기에 나는 늘 부족했다. 좋은 옷도,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사 주지 못했다.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는 혼자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약국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먹고살았다. 겨울철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에서 아이와 꼭 껴안고 잠들었다.
아이는 제일 먼저 어린이집에 도착해 가장 늦게 나왔다. 하루는 아이가 선생님에게 초코파이를 받았다. 배가 고픈데도 먹지 않고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만 했나 보다. 아이는 가루가 된 초코파이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엄마, 이거 정말 맛있어요. 한번 먹어 봐요.” 그날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밖에서 한참을 뛰어놀다 들어와 얼음물을 내밀며 선풍기를 틀어 주는 내게 말했다. “엄마,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에어컨을 틀어 줬어요.”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이었지만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메이커 옷을 사 주고 싶어 함께 매장에 갔다. 가격표를 본 아이가 급히 내 손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저거 30만 원이에요.” “알아, 엄마 저거 사 줄 능력 돼.” “그럼 엄마는 30만 원짜리 잠바 있어요?” “……아니.” “엄마도 안 입는 30만 원짜리 옷을 내가 어떻게 입어요. 전 그냥 인터넷으로 사 주세요.”
그렇게 매장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5만 원짜리 잠바를 사 주었다. “친구들한테 창피하지 않아?” “누굴 따라 사는 게 더 창피해요. 전 이게 좋아요.”
그렇게 자신보다 나를 먼저 생각한 고마운 아들이 어느덧 내가 엄마가 된 나이와 같아졌다. 홀로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두려울 텐데 아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생각해 보니까 엄마가 너한테 해 준 게 정말 없다. 아들을 거저 키운 것 같아. 엄마가 미안해.” “나는 엄마한테 받은 게 엄청 많은데요? 엄마는 늘 가진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걸 저한테 줬어요. 그래서 전 엄마가 주는 건 뭐든 좋았어요. 세상에서 제일요.”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어 우리는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다.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는 엄마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받았다고 하는 아들이 스물세 살의 나보다 훨씬 어른인 것 같아 뿌듯하고 고마웠다.
“엄마는 엄마로 사는 길밖에 몰랐지만, 너는 좋은 것 보고,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꽉꽉 채워 가길 바라. 그래서 언젠가 네가 아빠가 되는 날, 그 행복을 가족과 나누며 살길 늘 응원할게.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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