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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6, 2022

“좋은생각” 2022년 4월호

“좋은생각” 2022년 4월호 <내 동생 토토> 아마 엄마는 내게 애착 인형을 만들어 주려고 한 모양이었다. 다만 너무 늦었을 뿐이다. 내가 너무 성숙했거나. 다섯 살이 된 해, 엄마는 노란 토끼 인형을 들고 와 내게 말했다. “자, 네 동생이야. 동생을 사랑해 줘야겠지?” 나는 ‘엄마가 왜 이러나.’ 싶었다. 어린 나이지만, 토끼 인형이 내 동생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인형 따위가 동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심지어 나는 산타도 믿지 않았는데. 매년 산타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사람이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하다 끝내 토끼 인형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와, 내 동생!” 엄마의 기대에 응하고 싶었다. 나는 토끼 인형에게 ‘토토’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때부터 토토를 사랑하는 척했다. 토토를 살포시 안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갓난아기 다루듯이. 가끔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계속했다. 나는 토토에게 노래도 불러 주고 그림도 그려 주었다. 그러다 보면 이따금 토토가 진짜로 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토토를 내 동생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도취된 것 같았다. 토토를 동생으로 여기는 일에. 그러니까 토토를 사랑하는 일에. 나는 토토를 보며 생각했다. ‘분명 얘는 인형인데. 인형일 뿐인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한번은 실수로 토토를 품에서 놓쳤는데, 그 순간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토토를 보며 크게 놀랐다. 마치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자연스럽게 토토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 언제부터 토토를 안아 주지 않았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종종 선반에 장식품처럼 놓인 토토를 바라보며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 예전처럼 토토를 예뻐해 주고 싶었지만 좀처럼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몰입되지 않았다. 대신 나는 토토와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형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건 웃긴 일이었지만. 자꾸만 골몰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지?’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마음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에 따라 마음을 가질 수도 있구나.’ 내가 토토를 동생으로 대했기 때문에 토토는 내 동생이 된 것이다. ‘아, 소중하게 대하는 만큼, 그 대상은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구나.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구나.’ 처음 한글을 배울 때, 내가 쓴 문장은 “엄마 아빠 사랑해요.”였다. 그리고 그 문장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정말 사랑하나? 사랑이 뭐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며 부모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나의 말과 행동이 내 마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생각” 2022년 4월호 <등교 전쟁> 3월 아침, 연수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연수가 저랑 떨어지지 않겠다며 울어요.” 교문으로 나가 보니 연수 엄마 역시 눈시울이 붉었다. 연수가 내 손을 잡고 교실로 향하는 동안, 연수 엄마는 그 자리에서 한참 떠나지 못했다. 막상 일과가 시작되면 연수는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다. 가정과 학교에서의 모습이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연수 엄마는 해맑게 웃으며 공부하는 연수는 상상도 못한 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연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냈다. 또한 연수와 헤어지는 장소를 교실 입구, 교문 앞, 학교 앞 건널목, 아파트 입구로 바꾸며 서서히 거리를 늘리도록 조언했다. 마음이 단단해질수록 모녀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아이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원인으로는 낯선 환경이나 친구 관계, 어려워진 학습 내용 등이 있다. 저학년의 경우 분리 불안이나 배변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면, 등교 거부는 대개 담임교사와의 상담과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오늘 어떤 활동이 가장 재미있었나요?” 나는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 그 날을 되새기는 질문을 한다. 학교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아이와는 개별적으로 문답을 나눈다.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과 감정을 품고 교문 밖을 나섰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역시 우리 딸, 잘할 줄 알았어.” “역시 우리 아들, 내일도 잘할 거야, 파이팅!” ‘역시’에 강세를 찍고 칭찬하자. 아이는 믿고 응원하는 만큼 성장한다. “엄마, 내일 학교 가기 싫어.” 밤이 되면 아이가 또다시 걱정에 울먹이더라도, 안정될 때까지 품을 내어 주고 천천히 기다려 주자. 불안한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함께 불안해하는 보호자가 아닌 믿어 주는 보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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